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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26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5살이 되던 무렵, 할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아빠의 고향인 **으로 내려와 학창시절을 보냈다.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그냥 **이라고 한다. 서울은 말 그래도 태어난 곳이라 기억에도 없고 고향이라고 하기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다.
우리 아빠는 회사에 다니셨다. IMF가 터지고 아빠는 여차저차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엄마와 함께 노래연습장(노래방이라고 절대 하지 말라는 우리 엄ᄈᆞ..ㅋㅋ)을 하게 되셨다. 내 나이 여덟살이 되던 해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중학교를 들어가게 될 때쯤 엄마는 전공을 정해야 한다 하셨고 처음 시작부터 피아노보다 **가 더 좋았던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를 하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 보니, 여러 이유로 중간에 학원을 그만두는 친구가 참 많았고 나는 엄빠 덕분에 내가 원하는 것을 끝까지 할 수 있었다. 캥거루족인 지금의 나는.. 나의 부모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다시 한 번 깨닫는 날이 많다..
전공을 정하자마자 거의 바로 **가 하기 싫어졌다 내 나이 14~15세쯤?
사춘기였을까? 그냥 학원이 가기 싫어 집에서 자는 척을 하고 집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원장님은 기분전환용 ** ****를 사주기도 하셨고 ‘학원에 오기 싫은 땐 집에 있는 게 아니라 나가 놀아야 엄마한테 안들키지’ 라는 말을 해주시기도 했다.
(돌이켜 보니 혼내지 않고 마치 같은 사춘기 학생처럼 말씀해주신 것이 감사하다.)
그 당시에 참 집을 좋아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진심으로 집을 좋아했다. 완벽한 집순이ㅋㅋ
아마도 사춘기였겠지.. **의 가장 기본인 **자세.. 이 포지션 하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시기를 지나며 오랜 꿈인 ****와 함께 내게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의 기억이 그때의 마음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써내려 가본다.)
중1? 어느 특별활동 시간이었을까? 조별로 아주 짤막한 대사 하나 정도만 하면 되는 그런 연극 아닌 연극을 선보이는 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즐거움을 느꼈다..
앞에서 밝혔듯, 나는 발표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였다.
아주 어릴 적 유치원생 때부터 부끄럼이 많았던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그것을 깨고 싶어 일부러 손을 들어 발표를하고 선생님의 칭찬에 으쓱하기도 하며 발표력이 조금씩 좋아졌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쭉쭉 성장하며 쓰잘데기 없는 무대 공포증이 없어졌으면 좋으련만...
왜 인지 성장하며 공포증이 사라지는커녕 나의 발표력은 다시 퇴보해버렸다.
무대에 서기도 전에 심장이 쿵쾅거려 내 실력을 뽐내지도 못하고 콩쿨을 마무리 하곤 했다.
그런 내가 두 번째로 하고 싶은 꿈이 연기라니..
모르겠다 간단한 대사였지만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왜 **를 하고 싶고 연기를 하고 싶은 걸까?‘
내 마음을 나도 몰라 참 아쉽다.
대범하게라도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와 함께 나는 연기라는 꿈을 마음에 간직한 채 입시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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